2019.12.22

개인적인 경험으로 빗대어 봤을 때
현실은 이상(상상)보다 진부하거나 조악하기 마련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절망적이었고,
어떤 여행은 가지 않느니만 못한 것처럼.

그런데 가끔은 이상을 뛰어넘는 표현이 있다는 걸
오랜만에 느끼게 해준 2002년 도쿄에서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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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에티켓

책/독서록 2019. 10. 11. 16:09
2019.10.08
 
죽음은 그냥 사건일 뿐이다.
어떤 죽음에는 고귀함, 비천함, 필연적 또는 비극적 의미가 붙지도 하지만 모든 죽음에 그런 의미가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 저녁에 해가 지는 것처럼 그냥 시간과 같이 흘러 사라져 버리는 것의 한 부분일 뿐이다.
다만 어느 순간이 되면 내가 시간의 변화를 느끼는 존재에서 시간에 포함되어 사라지는 것으로 바뀌는 것 일뿐.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보다 서너 세대(世代) 이전 사람들이라면 면식은 있으나 낯선 손님으로,
현대의 사람들이라면 얼굴을 모르는 친구를 만나는 느낌으로 그리지 않을까.
짧은 시기 동안 죽음의 장소는 집에서 병원으로 변화했다.
그럼으로써 죽음의 인식 또한 주변에서 분리되었다.
현대 사회는 죽음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다루어 우리가 평소에 죽음을 떠올리지 않고 살 수 있게 만들었다.
 
책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작가는 독일 사회에서 죽음과 장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소개하고 있다.
책의 서술만 놓고 보자면 집을 나서서 여행지까지 가는 방법을 일기처럼 소개하는 느낌이다.
문체는 가볍지만 죽음으로 한 걸음 가고, 주변으로부터 한 걸음 멀어지는 매 과정이 갖는 의미는 그렇지 않다.
 
이를테면
[시신이 되었을 때 좋은 대우를 받고 싶다면, 장례업체를 직접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능하면 빨리요, 죽기 훨씬 이전에요.]
라는 블랙 코미디 같은 부분이 있는가 하면
 
[(시신에) 옷을 입히면서 셔츠에 단추를 잠그지 않거나 넥타이를 조금 잘 못 매 놓습니다.
 의도된 실수죠. 그렇게 유족들이 직접 시신을 만지게 유도해 놓은 겁니다.
 관 안에 든 자식을 잘 만져 주려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함입니다.
 아이의 손이나 뺨을 다시 한 번 만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처럼 마음의 깊이를 헤아리게 만드는 대목은 꽤 인상적이다.
 
나는 죽음이 두려운 건지, 죽는 순간 겪게 될 고통이 두려운 건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거기에 존재하는 어떤 두려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무지와 미지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나는 탐구함으로써 담담해지리라 생각한다.
언제 보더라도 낯설겠지만 삶에 대한 태도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이웃 정도로 알고 지내면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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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패러다임의 전환]
기존의 패러다임이 예외에 직면하여 어떤 관찰 현상을 현재의 세계관으로 설명할 수 없을 때 패러다임 전환 과정이 시작된다.
세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가정이 뿌리 깊기 때문에, 처음에는 예외를 무시하거나 실수로 여긴다.
쉽게 무시할 수 없을 경우에는, 기존의 패러다임에 예외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해본다.
이 방법은 바로 중세의 천문학자들이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려 할 때 취했던 방식이다.
그러나 결국 예외의 현상들이 계속적으로 관찰되며 기존의 세계관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된다.
 
[빛-실재]
우리의 모든 과학적 패러다임은 물리 세계가 실세계이며, 시간, 공간, 물질 및 에너지가 실재의 근본 요소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우리가 물리 세계의 기능만 제대로 이해하면, 우주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 근원적인 실재의 근본적인 차원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은 의식의 근본적인 차원이다.
 
[빛-세계]
우리에게는 시간과 공간 같은 실재가 확실해 보인다.
마치 시간과 공간이 우리 의식과 완전히 독립되어 물리 세계의 근본적인 차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칸트에 의하면, 이것은 우리가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어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 안에서 경험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 일어나는 모든 것을 지각하는 생물은 없다.
결국 모든 존재는 의식에 투영된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빛-의식]
‘나’는 뭔가? ……자세히 살펴보면, ‘나’라고 하는 건 경험과 기억이 모이는 기반임을 발견할 것이다. –에르빈 슈뢰딩거
‘난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르네 데카르트
모든 사고, 감정, 지각, 기억을 지울 때 우리는 순수한 주체인 자아의 본질을 빛으로써 느낄 수 있다.
이 핵심적인 자아감에는 개별 자아의 독특성이 없다.
모든 개성을 초월하고 특성이 동일하여 당신의 ‘나’라는 느낌을 나의 ‘나’라는 느낌과 구분할 수 없다.
당신이 ‘나’라 하고 당신에게서 빛나는 의식의 빛은, 내가 ‘나’라 하는 빛과 동일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일하다. 나도 빛이고 당신도 빛이다.
 
[맺음]
작가는 우리의 의식을 물질세계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의 특이한 예외로 제시한다.
그의 생각을 들어보면, 우리가 패러다임 전환의 시작점에 서있는 모습을 그리게 된다.
의식의 대한 발견을 통해 역사적으로 그래왔던 것처럼 물질세계를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그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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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책/독서록 2019. 10. 11. 16:08
2019.09.11
 
a. 인간은 가장 훌륭한 도구이며, 스스로 검열할 줄 안다는 점이 그 훌륭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b. 인간이 인간을 도구로 삼는 것을 막기 위한 합의가 사실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c. 진실은 가장 뒷장에 있고, 역사는 가장 앞 장에 쓰여 있다. 그 두께만큼 진실은 멀리 있다.
 
[과거가 필요한 형태로 변조되면 그것이 바로 과거인 것이며, 다른 과거는 존재할 수 없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같은 사건에 대한 사실이 일 년 동안 여러 번 바뀌어도 상관없다.] 
- 과거는 아무렴 어떻든 지금이 중요한 사회로 부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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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3
 
무엇에 낯 붉혀왔는지 고백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것으로도 괜찮은지에 늘 멈춰 서게 된다.
그도. 나도.
 
오늘 날씨가 당신만큼 좋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고 날씨마저 좋다면,
'정말 날씨 한 번 좋다'라고 밖에 더 잘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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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5
 
샛바람마저 다홍빛으로 녹슬어가는 늦여름 풍경 속에서
나는 한 쪽 무릎을 끌어안은 채
이따금 귓가를 스치는 이 바람은 말고 모든 것들이 멈추기를 바라고 있다.
시간도 사라졌다 흐르기를 반복하는 그 순간에
한숨 푸른 담배 연기에 떠나 버린 사람들에 대한 위로를 담아 전한다
 
[우리는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은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감각은 대개 익숙한 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유일하게 매일 나를 기다려주는 나의 집 문고리가 어쩐지 차갑게 느껴지던 날이라거나,
아무 날 아무 시에 대면하게 된 어떤 돌멩이와 나의 존재를 치환해보는 순간에,
규칙적으로 흐르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교차로에서 우두커니 건너편 신호를 바라보는 그때,
나는 뺑소니 사고를 당한다.
그 공허와 맞닿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아니, 극히 순간적이다.
그 목격자 없는 사고로 인해 나의 질량이 어딘가 부족해졌다는 것은 늘 과거형으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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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7
 
[비평] 우리가 속해 있지만 살고는 있지 않는 곳에 대한 이야기
 
결론부터 쓰자면, 우리가 세상의 어떤 부분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비난받을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작가가 했던 말을 빌리자면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으며
 우리는 그 안에서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독서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주변에만 관심을 쏟아도 부족할 지경이다.
때문에 생활의 지평선 너머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 자체로써 대단한 헌신적인 행위 일지도 모른다.
 
책 이야기로 넘어가자.
몇 장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무지한 이국인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어떤 서양 노인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안타깝게도 노인은 썩 좋은 언변을 가지고 있진 않은 것 같다.
그는 대뜸 “너희들은 세상으로부터 잘 못된 정보를 얻고 있기 때문에 안 좋은 편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침팬지 보다 멍청한 것이다.”라고 윽박지른다.
서두에 썼듯 그 말에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그의 언변에 안타깝다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그의 비난이 당신을 향한 배려나 세월의 지혜로움을 하나도 담고 있지 않은 날것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내가 세계의 어디를 가든 모두들 멍청하게 일을 하고 있으며 나는 그것을 알아차렸고, 사실적 데이터를 기반한 해결 방법을 찾아 그들을 계몽 시켰으며 많은 생명을 구했다.
내가 방문하지 않은 세계는 여전히 멍청하게 일하고 있으며,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세계의 여러 기관이 나의 시각을 따를 것을 권한다.
’책의 깊이에 비해 꽤나 많은 두께를 차지하는 참조 문헌 섹션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여백이 이 무용담의 반복으로 채워져 있다.
 
사실 책의 큰 두 가지 콘셉트인 ‘통계적으로 제대로 사고하는 방법(사기당하지 않는 방법)’과
‘보건 분야의 세계적인 흐름(이 세상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보다 괜찮다는 것을 의미하는 지표들)'의 면에서만 보면 썩 나쁘진 않다.
문제는 위 두 가지 핵심은 매 챕터의 일부분, 그것도 대부분 마지막에 단 몇 줄로만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며,
그마저도 나중에 다시 책을 뒤적여 볼 만한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의미가 퇴색되어 버릴 데이터들만 잔재해 있는 이 책을 책장에 꽂아둘 필요가 있을까?
 
끝까지 이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은 ‘상식과 상식이 아닌 것을 구분하지 않으며’, ‘모르는 것과 틀린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근사(approximately)하게 알고 있는 것과 근거 없는 추정’을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대중적으로 읽힐 만한 책은 아니라고 본다.
세상에는 더 친절하게 통계를 읽는 방법을 알려주고, 흥미로운 데이터를 보여주는 책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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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책/독서록 2019. 10. 11. 15:37
2019.05.21
 
과거에 인류가 이동했다.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숲에서 들판으로, 육지에서 바다로,
자연을 피해, 먹을 것을 찾아, 새로운 땅을 찾아.
 
생존경쟁에 딱히 뛰어날 것 없는 동물이었다.
그런데 인간은 생각했다. 공통의 목적에 대해 똑같이 상상할 수 있었고,
그 결과의 일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믿었기 때문에 협동을 통해 개인의 능력보다 점점 더 많은 것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이를 통해 사피엔스라는 종(種)은 단순히 생물학적 진화를 거쳐온 다른 종과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제 인류는 국가와 경제, 종교와 질서, 기술과 잉여 식량을 갖게 되었다.
인류는 또 이동을 시작한다.
종교적 신념을 전파하기 위해, 더 쓸모 있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이전과 이동하는 방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과거에는 피가 흐르지 않는 방향으로 이동했다면 이번엔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피가 흘렀다.
 
그리고 역사와 발길이 닿았던 방향으로 이동하는 시대가 끝이 났다.
지구는 둥글었고, 우리는 현실 위에 집단적 상상으로 쌓아 올린 사회에 정착했다.
이제 인류의 고민 방향은 좌우에서 상하로 바뀌었다.
지구를 탈출할 수 있는 속도를 계산하여 우주를 향해 날고, 우주만큼이나 미지의 영역인 해저의 지도를 그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대중의 시선은 살짝 턱을 들어 올려야만 그려지는 곳을 향해 있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바로 내가 조금 더 부유하게 사는 방향이다. 집단적으로 이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던 과거가 몇 번인가 있었지만
그들은 결과적으로 좀 더 촘촘한 층계를 얻었다는 것뿐이지 이동하는데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에게 남은 이동 방향이 나침반의 지침과 상관 없어지게 되면서 우리는 각자의 층계를 마련했다.
물론 대부분은 부(富)의 층계 위에서 땀 흘리고 있을 것이지만, 누군가는 아직 어떤 층계를 오를 것인지 고민 중일 것이다.
또는 몇 개의 계단을 올라보니 다른 계단이 궁금해지기도 할 것이다.
이제 위를 향하는 길밖에 남지 않았지만 자신이 오른 층계의 높이가 행복의 크기와는 관계가 없음을 이해하고 떠나길 바란다.
층계 어디쯤에서 가끔은 인간으로부터 소외된 것을 생각해 주기를.
우리가 어디에 있든 과거의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던 때의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존재임을 때때로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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