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9

지금은 어디인가?
어느 날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부딪힌다. 물론 지금껏 그런 질문은 해 본적도 없고, 교과서에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가르쳐 줄 것이라 기대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해봐야 한다.

정답은 있을까?
애석하게도 우리는 아직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대신 몇 가지 선택지를 갖고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역사적 기록(종교)이고, 한 가지는 역사적 추론(과학)이다. 재미있는 점은 두 가지 답안이 서로 모순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 가지 중에 하나가 정답일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던지). 나는 적어도 세 가지의 선택지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기록이 완벽히 증명되거나, 역사적 추론이 증명되거나, 완전히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는 선택지이다. 이를테면 나는 불가지론(不可知論)에 가까운 자이며 가능성을 믿는다.

이 책은?

이 책은 유신론의 오류를 폭로하는 바이블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나는 작가가 진심을 담아 순수함으로부터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의 후반부에 작가는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기독교 아이라거나 이슬람 아이, 힌두교 아이 같은 것은 결코 없다. 기독교계 부모의 아이, 이슬람교 부모의 아이, 힌두교 부모의 아이만 있을 뿐이다. 부모는 자신이 선택한 방식대로 아이들을 문화화할 권리를 신에게서 받은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주장으로부터 희망이 떠오르는 방향을 함께 관조하는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 이는 종교와 도덕, 가치관 등 모든 것을 초월한 가치 있는 교훈이다. 옳고 그름, 사실을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부족한 어린아이들에게 삶의 가치관을 대신 세워주지 말 것이며,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면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보다 좀 더 새로운 세상을 탐구해갈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다. 그 아이가 커서 나와 똑같은 질문에 부딪혔을 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걸을 수 있도록 말이다.

사실 책을 읽고 든 생각들이 꽤나 많다. 배워야 알 수 있는 것(진화론과 같은 이성 과학),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문화로서의 종교의 영향), 각각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 값비싼 건강 보조 식품 광고를 보며 죽음을 떠올렸던 경험 등. 이런 것들을 책의 유익한 부분과 함께 모두 정리하여 쓰고 싶었지만 욕심은 과하고 능력은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 모든 부분을 공유할 수 없어 아쉽지만 스스로에겐 조금의 깊이가 더해진 것 같아 만족스럽다. 만들어진 신이란 책을 접하게 된 계기인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은 이제 더 깊은 탐구보다는 배움으로 마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볼까 한다.

훗날 나의 아들과 딸이 ‘어째서 인간은 존엄한가’에 대해 질문한다면 어떤 답을 준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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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alking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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