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5
 
샛바람마저 다홍빛으로 녹슬어가는 늦여름 풍경 속에서
나는 한 쪽 무릎을 끌어안은 채
이따금 귓가를 스치는 이 바람은 말고 모든 것들이 멈추기를 바라고 있다.
시간도 사라졌다 흐르기를 반복하는 그 순간에
한숨 푸른 담배 연기에 떠나 버린 사람들에 대한 위로를 담아 전한다
 
[우리는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은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감각은 대개 익숙한 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유일하게 매일 나를 기다려주는 나의 집 문고리가 어쩐지 차갑게 느껴지던 날이라거나,
아무 날 아무 시에 대면하게 된 어떤 돌멩이와 나의 존재를 치환해보는 순간에,
규칙적으로 흐르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교차로에서 우두커니 건너편 신호를 바라보는 그때,
나는 뺑소니 사고를 당한다.
그 공허와 맞닿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아니, 극히 순간적이다.
그 목격자 없는 사고로 인해 나의 질량이 어딘가 부족해졌다는 것은 늘 과거형으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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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alking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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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독서록 2019. 10. 11. 15:31
2018.11.26
 
어렴풋이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그 뒷덜미에 번득이는 느낌은 아니지만 어슴푸레한 광기의 그림자가 어느 한 켠에 눌어 있는 듯 했다.
 
[잠들지 않음으로써 육체에 생기가 돌았다. 
 마지막으로 잠들었던 시간과 멀어질수록 젊고 아름다워졌다.
 무심코 지켜본 잠든 남편의 모습은 섬뜩하리만치 어리숙해 보이고 추해 보였다.
 모두가 죽음으로 빠져드는 시간 사이에서 혼자 깨어있는 낯선 두려움은 까맣게 잊었다.
 그녀의 내면은 고요한 하늘을 유영하며 혼자의 고고함을 한껏 발산하려는 새와 같았다.
 그러다 그 새는 무심코 어떤 두 그림자 사이에 내려 앉았다.]
 
그녀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던 두 그림자의 이름은 “깨어있는 시간”과 “잠들어 있는 시간”이라 짐작해본다.
어떠한 표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두 그림자이지만 그녀에게는 똑같은 죽음의 위협으로 느껴졌으리라.
 
- 깨어 있는 시간. 나는 소설의 흐름에서 깨어있는 시간을 생의 소모라는 관점에서 바라봤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심지를 붙잡고 있는 듯, 그녀는 계속해서 잠들지 않고 깨어있음으로
  남은 페이지의 두께 보다 빨리,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시간. 잠드는 시간은 깨어 있는 시간의 종말이다.
 다시 눈뜬다는 보장이 없는 잠은 죽음의 시작과 같다.
 혹은 다시 깨어나더라도, 그 사이의 의식의 단절에 의해 잠에서 깨어난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라는 불안감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삶이지만 현재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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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alking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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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이유는 없이 라오스행을 결정하고
나서 우연히 눈에 띄어 구입한 책
 
책 내용이 뭐가 됐든 제목 때문에
(더하여 작가 때문에)이런 우연이?
이거 살 수 밖에 없는거군? 하고.
 
어쩌면 내가 나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해야 할 한 줄 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walking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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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100퍼센트의 상대가 자신을 찾아 주었을 때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좋은 것일까 하는..두 사람의 마음 속에 약간의, 극히 사소한 의심이 파고든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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