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4

원문 또는 원문과 감상

[출발1 – 기대에 대하여]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기대감은 영화의 포스터 같은 것이다.』
상상했던 것들은 극히 순간적인 장면에 불과하다. 우리의 기대가 한 장면의 포스터라면 떠나서 되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은 영화가 된다. 어떤 여행자는 잡지의 한 페이지에 유혹되어 표를 끊고 영화 내내 상영되는 지루하고 짜증 나는 장면들에 질려 그 장면에 닿기도 전에 영화관을 빠져나올지도 모른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여행을 떠나면 내가 상상한 대로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 말에 놀라기 전에 그동안 내가 무엇을 상상했는지 먼저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예술적인 이야기들은 현실이 우리에게 강제하는 것들을 뭉텅 생략해버린다.

[출발2 –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면 고요가 찾아든다. 저 밑에는 적과 동료가 있고, 우리의 공포나 비애가 얽힌 곳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지금은 아주 작다. 땅 위의 긁힌 자국들에 불과하다. 물론 이 오래된 원근법의 교훈은 전부터 잘 알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차가운 비행기 창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있을 때만큼 이것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가 타고 있는 것은 심오한 철학의 스승이며, 보들레르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제자이다.』

[동기2 – 호기심에 대하여]
『나는 탐험가가 될 것인가, 순례자가 될 것인가』
별 1짜리 광장, 별 3개짜리 수도원, 별 3개짜리 식사.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여행자는 뭔가 잘 못 된 것이 틀림없다.
우리보다 먼저 와서 사실들을 발견한 탐험가들은 그런 행동(온도를 측정하고, 공원의 길이와 너비 등을 재어 기록하는 등의)을 통해서 의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해 놓았다. 세월이 흐르며 이런 구별이 굳어져 어느 곳의 무언가들은 이미 가치가 확정되어 버렸다.

[풍경1 –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그 장면에 내 기억 속에 박힐 줄은 몰랐다. 교통체증 속에서 수많은 걱정과 관심사들을 뚫고 근심의 소용돌이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었을 때 깨달았다.』
시간의 점(spot). 수십 년 뒤에도 내 안에 살아남아 기억 속에서 그곳을 불러낼 때 영혼은 힘을 얻는다. 그 장면들은 우리와 함께 평생 지속되며, 우리의 의식을 찾아오는 어떤 순간마다 현재의 어려움에 반대되는 그 모습에서 해방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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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2 – 숭고함에 대하여]
『무엇을 숭고하다 그러는가. 그것의 정의를 정확하게 읊을 순 없겠지만 그 단어로 마주치는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우리의 이해나 표현력은 너무도 빈약하며 언어는 더욱 빈곤하기에, 숭고함이란 것은 잠깐 내렸다 사라지는 눈처럼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개인에게 존재했던 경험으로 밖에 남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러한 장면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가는 것이라 그저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숭고한 장소들은 비논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그 자체로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어나선 안될법한 비극을 바라보면서도 놀랄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예술1 –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를 그리기 전에 프로방스에는 사이프러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예술2 –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그림이나 사진, 말과 글로도 아름다움을 소유하기엔 부족하다. 심지어 더 잘 그리고, 더 잘 쓰고, 더 잘 묘사한다고 해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 아름다움을 보는 방법을 배우고 모든 순간에서 아름다움을 잘 보려 하는 것이다.』
존 러스킨은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한 결론 다섯 가지 중 네 번째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넷째,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귀환 – 습관에 대하여]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팡세」단장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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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alking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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