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는 없었던, 대체 어디서 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엉킨 실타래 같던 입국심사줄.
입국 심사대 따윈 이 줄 끝의 어디쯤에 있는 건지,
칙칙한 벽에 왠지 힘 없이 걸려있는 벽시계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호텔에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까 지쳐있던 새벽 두시 반쯤..
미리 알아온 대로 내 일정에 맞는 7일 유심을 주문했지만 그녀가 맞게 이해했는지 조바심 나던 유심센터.
눈에 익숙한 몇가지 빼곤 무슨 맛일지 상상이 안가는 편의점 냉장고의 음료수들.
결국 마셔봤던 음료수를 사들고 시끄러운 단체 여행객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털래털래 택시 승강장을 향해 걷던 길.
요란하게 내 발꿈치를 뒤쫓는 캐리어 소리.
그리고 철지난 라디오 퀴즈 쇼를 하듯 대화하던 택시기사.
뭐가 있는지 껌껌한 창밖을 구경하는듯 틈틈히 미터기를 흘깃 거리던 나의 의뭉스러움.
 
이것들이 당신이 상상해온 여행 장면 사이에 일어날 일들이다.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당신의 계획에서 간과되었던 이런 사건들에 저항심이 일어난다면
당신의 여행은 아마 아주 특별한 몇몇 장면을 빼곤 그저 힘들고 짜증스럽기만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당신의 여행지를 그곳으로 결정하게 만들었던 그 사진의 덤불 숲은 행복감에 젖게 할 만큼 싱그러운 색이 아닌,
어느 시골 구석에 스러진 농기계 처럼 우울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색일 것이고,
마치 하나하나 조각해놓은 듯 아름다웠던 가지들도 볼썽사납게 엉켜있는 포장끈 같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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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alking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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